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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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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체첸인, 타타르인 등 러시아 무슬림들이 성지순례를 위해 사우디를 방문하는 경우는 자주 있고 90년대부터 증가하고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20세기[편집]
소련 초기에 두 나라는 우호적인 관계였다. 소련 초기 키르기즈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지도자[1] 였고 저명한 외교관이었던 나지르 튜르야쿨로프와 '붉은 파샤'라는 별명까지 있었던 카림 하키모프의 활약 덕분이었다.
카자흐인이자 무슬림이었던 튜르야쿨로프는 메카를 정식으로 방문할 수 있었고 처세술에 굉장히 능하여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1대 국왕)와 파이살 왕자(후일 3대 국왕)과도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었다. 소련 외무인민위원 막심 리트비노프[2] 는 아랍권에서 영국을 상대로 한 외교전에서 소련이 승리를 거두었다면서 크게 자평하였고, 튜르야쿨로프 본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내 외국 외교관들 중에서 원로급의 대접을 받았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주변 지역에서 소련 대사가 되었고, 1932년에는 마침내 사우디아라비아가 소련에 대사를 보내게 된다. 심지어는 당시 정부 수반이자 3대 국왕이 되는 파이살 이븐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본인이 직접 소련을 2주동안이나 방문하기도 했고, 튜르야쿨로프는 이 과정에서 미국 스탠다드오일과 영국의 앵글로더치셸을 경쟁에서 이기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유전개발권을 따냈다. 이후에는 소련을 상대로 한 보호무역까지 없애는데 일조했는데...
소련의 저명한 정치인들이 그랬듯이 대숙청을 견뎌내지 못했다. 튜르야쿨로프는 NKVD의 마수에 걸려 사형당하고 말았고, 경악한 압둘아지즈 국왕은 하키모프에게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을 하라고 제안하였으나 하키모프도 대숙청 당시 사형당한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같이 본국으로 돌아가 사망하는 길을 택했다.[3]
압둘아지즈 국왕은 소련과 모든 외교관계를 단절해버리고 다시는 대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해 1939년에 결국 외교관계가 공식적으로 단절되어 버렸다. 이후로 사우디 아라비아는 미국과의 우호국으로 남았다.
이후 사우디가 중동 문제, 유가 문제에서는 미국과 갈등하기도 했고,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충격을 받은 사우디가 1981년 비동맹노선을 선포하며 미국과 거리를 두고 소련에게 중립을 지키겠다며 유화적인 모습을 단기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소련이 공산주의 국가였고, 사우디는 이슬람이라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사우디는 반소 무자헤딘을 대대적으로 지원하며 사우디는 냉전 시절에는 끝까지 친미 입장을 유지했다.
그래도 탈냉전기에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1990년 소련과 사우디는 관계정상화 합의를 하고 1991년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2.2. 21세기[편집]
2.2.1. 2010년대[편집]
2014년 이후 러시아 경제가 어려워진 이유는 서구의 경제 제재보다는 친중 국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유가 치킨 게임으로 국제 유가가 폭락한 영향이다.# ## 유가 치킨 게임 시작 이후 러시아의 GDP 감소
2015년 2월 5일, 러시아는 사우디로부터 시리아 지원 중단 압박을 받았다.#
8월 11일, 사우디는 러시아로부터 미사일 공급 계약을 추진하는 등 협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시리아 사태에 대해선 이견을 보였다.#
10월 11일, 푸틴 대통령과 빈살만 외무장관이 시리아 사태를 논의했다.#
2016년 2월 28일, 사우디 측은 러시아와 시리아가 휴전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2018년부터 사우디가 언론인 암살 사건을 겪고 있자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사이가 좋은것은 아니라서 사우디 자본의 영향이 러시아에도 영향을 주고 있고 체첸의 살라피스트들중에는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있다.
2018년 12월 1일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G20정상회의에서 만난 푸틴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감산 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
2019년 2월 19일에 푸틴 대통령은 살만 국왕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양자 관계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
2019년 6월 29일에 오사카의 G20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과 빈살만 왕세자는 7월 이후에도 원유협조감산을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
2019년 10월 13일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사우디를 13년만에 방문했고 국영방송 알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와 이란 모두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라고 강조했다. # 그리고 푸틴 대통령은 살만 국왕을 만난 자리에서 희귀한 흰매를 선물했다. #
2.2.2. 2020년대[편집]
2020년 3월에는 서로 유가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3월초에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격렬한 말다툼을 한 뒤 석유 전쟁을 지시했다고 중동 전문매체 미들이스트아이가 보도했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6월말이 시한인 하루 970만 배럴 감산을 7월까지 한 달 더 연장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푸틴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OPEC+(석유수출국기구·OPEC 및 주요 산유국 연대체) 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2월 15일(현지시간)에 푸틴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전화 통화를 하고 코로나19 대응, 감산 합의 이행 등에 대해 논의했다.#
사우디가 러시아에 천연가스 시장 협력을 제안했다고 러시아측이 밝혔다.#
2022년 4월 16일에 푸틴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가 전화 통화를 하고 우크라이나 상황과 원유 시장에 대해 논의했다.#
7월 21일, 푸틴 대통령과 빈살만 왕세자가 전화통화로 양국관계에 대해 논의했다.#
8월 15일, 사우디의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설립한 투자회사가 가스프롬 등 러시아 주요 에너지 기업 3곳에 각각 13억 7,000만 리얄, 1억 9600만 리얄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9월 22일, 빈살만 왕세자가 상하이 협력기구에 적극 협력하기로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밝혔다.#
2023년 2월 4일, 사우디의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 장관은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 제재가 에너지 부족 심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6월 4일에 사우디가 석유 감산 정책을 실시하자 양국간 석유동맹에 금이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3. 여담[편집]
2019년 10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을 때 사우디 측의 의장대가 러시아 국가를 잘 틀다가 갑자기 삑사리난 게(...) 러시아 뉴스에 보도되었다.#[4]
4. 관련 기사[편집]
5. 관련 문서[편집]
[1] 카자흐 공산당의 지도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현대 카자흐스탄에서도 크게 기념하는 인물이다.[2]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의 전임자다.[3] 1943년에 카이로에 소련 대사관이 개설되고 난 뒤에 압둘아지즈 국왕은 두 사람의 생사를 타진해 보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 돌아올 수는 없었다.[4] 러시아 투데이에선 사우디 리믹스(...)라고 칭했다.